‘나는 언제 어디에 있었는가.’ 시간과 공간은 우리의 세계를 이루는 두
축이다.
공간은 나의 안팎으로 직접 경험할 수 있지만, 시간은 보고 만질 수 있는
실체가 없어 개념으로서 생각할 수만 있다.
기호로 표현되는 시간은 시간의 본모습을 모두 드러내지 못하는 듯하다.
시간은 실재하는가? 혹은 그저 인간에 의해 개발된 환상에 불과한가?
과거는 매일 더 빨리 멀어지고, 미래는 준비되지 않은 나에게 무겁게
밀려든다.
이 흐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시간이란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야 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는 그 속도에 발맞추기에 급급해, 시간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첫 번째 단상.
하루는 24시간, 1시간은 60분, 1분은 60초. 분할된 시간은 우리 삶의
규칙이 된다. 이 체계는 그에 맞춰 행동하도록 우리를 끊임없이
재촉한다.
이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기 위해, 1초마다 울리는 신호에 맞춰 돌을
옮기는 작업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돌의 물성, 몸의 상태, 옮기는
동작의 크기에 따라 신호 사이의 간격에 대한 감각은 늘어나기도,
단축하기도 한다.
신호의 주기는 일정하지만, 몸이 느끼는 신호의 리듬은 미세하게 달라진다.
규칙적으로 분할된 시간과 움직이는 몸을 통해 감각되는 시간 사이에
부딪힘이 발생한다.
여기서 나는 시간이 시계의 기호들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다. 시간을 느끼는 몸 안에서 시간은 좀 더 유동적인
것이 되어 짧게 압축되기도 하고, 길게 늘어지기도 한다.
두 번째 단상.
숨 가쁘게 앞으로 달려가는 시간에 대한 저항으로써, 그리고 시간에 대한
만족스러운 단서를 찾아내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으로써, 인적이
드문 곳에 카메라를 고정해 두고 같은 장소의 다른 시간을 반복해서
촬영했다.
바쁜 와중 많은 것들이 생략되는 일상과 달리 그곳에는 풍경과 그 앞에
멈춰 선 나 그리고 반복해서 촬영하는 일만이 있었고, 나는 천천히
변화하는 풍경을 바라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오랜 시간 같은 대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에 대한 기억들과 미래에 대한 상상들이, 현재의 모습 위에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 그 풍경 앞에서 나의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본다.
급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현재를 선명하게 바라보지 못했다.
그러나 과거의 결과로써, 그리고 미래에 대한 믿음의 투영으로서 과거와
미래가 겹친 지금을 바라볼 때
나는 오늘을 긍정하고, 좀 더 뚜렷하게 볼 수 있다. 긴 시간의 반복을 통해
나의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를 배운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