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기의에 연결된 기표에 불과한가? 제 그림은 이 질문에 관련된
메타회화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림, 특히 구상화의 경우 이미지에
대응하는 텍스트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림 외부에 있는 해석과
완벽하게 분리될 수 없습니다. 여기서 그림과 그림이 아닌 기호는 무엇이
다른가? 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저는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애정을
표현하는 하트 모양 기호, 행성을 설명하기 위해 실체를 모방하여 만든
지구본 등을 선택하여 그림의 소재로 삼습니다. 즉 그림처럼 기호, 혹은
실체를 모방하고 있는 대상 중 그림이 아닌 것들을 선택합니다.
이후 저는 위의 소재들을 원래의 맥락으로부터 분리합니다. 예를 들어 위에
언급한 지구본의 표면을 벗겨 내어 하트 모양의 겉면에 덮어씌웁니다. 이를
통해 제 그림 안에서 지구본의 무늬가 실제 지구의 대륙을 설명하지 못하게
왜곡하고 하트를 애정과 관련된 어떤 의미도 전달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기의와 단절된 기표, 현실을 지시하지 못하는 모방을 그림 속에
드러냄으로써 저는 그림이 외부 텍스트와 분리될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